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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청하면 미남리(美南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1914년 위필미, 남천, 새장터, 관덕, 호암의 일부를 합하여 미남리라 하였다.  
 
○ 위필미·필미(筆尾)·필미(筆美)·필봉 
하필미의 뒷산이 붓끝 같은데 연유하며, 이 산의 철도역 부지를 닦을 때 없어지자 붓과 함께 생활하는 선비가 많다는 뜻으로 필미(筆美)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형이 행단형이라 하여 마을 가운데 돛대의 상징인 찜대를 세워 두고 있으며, 배가 떠내려 감을 막는다는 뜻과 홍수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마을 남서쪽 필미수(筆美數)라는 송림을 60년 전에 조성하였다. 이 방풍림이 조성된 이후부터 가난하던 마을이 부촌으로 변모하였다 한다. 일제 때부터 과수원이 많던 곳이다. 마을 남서쪽에 일제 때 축조된 폭 5.5m, 길이 108m의 청하교가 있었으나 1990년 개축하였다. 200여 년생 상수리나무 당산목이 마을 남쪽 송림 속에 있으며 정월보름날 초계정씨(터주)와 평택임씨 골목 신위를 모시고서 동제사를 지낸다. 
 
○ 남치이 남천 
용산 자락에 형성된 마을인데 미남천의 남쪽에 있다 하여 그렇게 불려졌다. 마을 북동쪽 하천변에 있는 탕갓봉 중턱 서당골에 순흥안씨가 자리를 잡고 마을을 일구었는데 7번국도가 생기면서 마을이 양분되었다. 남쪽 쌀알들에는 1989년까지 미군항공관제소가 있던 곳에 해운항만청 포항해상무선표지소가 있고, 칼바위 앞 골짜기에 원각사 (195년 건립)란 작은 절이 있다. 동제는 정월보름날 지낸다. [당산목은 200여 년생 팽나무, 순흥안씨터주, 김해김씨골목] 
 
○ 땅골·당동 
용산 속의 한 골짜기에 두세 집이 남아 있다. 초계정씨 제실과 김해김씨 제실이 있으며 천재단기도원이 있다. 옛날에 신당이 있었다 하여 당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용산 정상 남서 허리목에 용산사지가 있다. 소동리의 범바우마을로 이어지는 까치고개가 이 마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석실고분이 다수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이미 도굴되었다 한다. 
 
○ 새장터·사장터  
조선조 때 궁술을 연마하던 곳으로서 1910년대까지 망실루가 있었다. 그 당시엔 오막사리 한두어 채 있던 곳이라 전한다. 덕성리 북동 도로변에 있던 청하파출소가 1958년 이건되어 오고, 1952년 해아중학교(현 청하중학교)가 부근 관송전 속에 설립되고, 5.16직후 덕성리에서 서던 장이 가까이 옮겨옴에 따라 새장터라 부르게 되면서, 마을이 급속히 커지게 되었다. 약 25년 전까지 극장이 있었으며, 농협창고, 정부미도정공장, 농협회관이 있고, 1988년 농협청하 단위조합 건물이 신축 이건되었다. 주위에 과수원이 많이 들어섰다. 정월보름에 마을 제당에서 원덕신위에 제사를 지낸다. 
 
○ 관덕동 
관덕관송전의 북동쪽에 있었던 작은 마을이라 전할 뿐이다. 관덕은 덕성을 바라다 보는 위치에 마을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관덕관송전은 세종조에 조림된 숲으로서 그 일부가 남아 기청산농원이 보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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