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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송라면 하송리(下松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삼송리(三松里)의 동(東)편에 위치하며 7번 국도(國道)변(邊)에 찬샘이, 별장촌이 있어 50여 호가 살고, 중송리(中松里)에 연결된 원래의 하송리(下松里)에는 90여 호 정도 살고 있다. 세조 4년(1458) 화산(花山) 일원에 있던 송라역(松羅驛)이 이 지역으로 옮겨와, 관동(館洞)에는 찰방(察訪)을 주재케하여 인근 7읍(邑)의 역(驛)을 관장케 했을 때 크게 번창했던 마을로서 오역(午驛), 외역(外驛), 혹은 외(外) 3동(洞)이라고 불러오던 마을이다. 일명 만성(蔓城)이라 부르던 곳이다.  
 
현재의 하송리(下松里)보다 북쪽에 위치했었는데 홍수(洪水)로 인하여 동상(洞床)이 이동되고 수질이 나쁜지라 남쪽으로 서서히 옮겨 앉게 되었으며, 찬샘이 마을은 달애산 서편 투사리(3호 殘存)가 시원지(始源池)이며 오역(午驛-外驛)이 형성되면서 서쪽으로 300~400m 이동(移動)된 것이라 전한다. 한때는 성도암촌(成道庵村)등 12개의 자연부락이 삼송리(三松里) 주위에 산재(散在)하였다고 한다. 고종(高宗) 32년 내북면(內北面)에 속했을 당시에는 북면사무소(北面事務所)가 하송(下松)에 있었으며 숲을 제거(除去)한 공터에는 5일장이 3일, 8일에 서곤 한다.  
 
하송(下松)숲은 삼송리(三松里)의 지형(地形)이 배와 같다 하여 지금도 돛대의 상징인 찜대를 마을 가운데 세워두고 있으며 배는 바다를 향해 떠내려간다는 이론(理論)에 의하여 동편 바다 쪽을 숲으로 가려뒀었는데 200 수 년 전 안청계리 호용곡(虎龍谷)의 못이 홍수(洪水)로 붕괴하여 이 지역이 급류(急流)에 휘말렸을 때 이 숲으로 인하여 숱한 생명(生命)과 곡식더미를 건졌으므로 일명 [식생(食生)이 숲]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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