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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흥해읍 곡강리(曲江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1914년 봉림이, 동골, 너구(汝口), 흥곡(興谷), 곡강, 봉림이불 등 자연부락을 합하여 곡강(曲江)이라 하였다. 
 
○ 봉림이(鳳林) 
1리로 뒷산의 지세가 봉(鳳)의 형국으로 봉이 대밭에서 먹이를 얻는지라 봉림(鳳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동짓달 초하룻날 동제를 지낸다. 마을 서쪽 구도로 입구의 형세가 부채처럼 생겨서 선지(扇紙)고개라 한다. 마을입구에 있는 팽나무(300여 년생)의 잎 돋는 모습을 보고 그해 농사를 가늠했다 한다. 한때 동하며 소재지였다. 경주 최씨와 진주하씨의 집성촌이다. 1765년 발간된 영일 읍지에 이 마을 앞 큰들을 봉림호(鳳林湖)라 기록하고 있다. 들 중간도로(봉림-너구)의 남쪽을 배달 이들, 도로 북쪽을 갯들이라 한다.  
 
○ 동골(東谷) 
2리에 속하며 넓은 구릉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너구(汝口)의 동쪽 골이란 뜻이며, 이 지역은 물론 용한(龍汗)-우목리(牛目里)에 이르는 해안 촌락의 터주가 대부분 여씨(汝氏)라 한다. 
 
○ 너구(汝口) 
2리로 너구 남쪽 언덕비탈에 위치한다. 이 골에 들어와서 살면 흥(興)한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 다. 마을 남서쪽 언덕 위의 제당(당산목 200년생 소나무)에서 동짓달 초나흗날에 동제를 지낸다. 1969년 준공된 천마지(답다리 못) 남쪽에 대각사(구 용화사)가 있다. 이 답다리 골 어귀에는 두부(頭部)가 파손된 미륵석불(높이 1.8mm 연좌대 직경 2m)이 남아 있다. 천마지 앞들은 옛날 봉림호수였 을 때 배를 매달아 두던 곳이라 배다리들이라고 부른다. 말을 닮은 천마산(天馬山)은 말머리·말잔등 말꼬리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말목 부분이 잘린 것처럼 따로 떨어져 있다. 옛날 남송리 무심골에 살던 한 장수가 천마가 화살보다 느리다고 목을 내리쳤는데, 그 순간 말이 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 흥곡(興谷) 
2리에 속하며 넓은 구릉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너구(汝口)의 동쪽 골이란 뜻이며, 이 지역은 물론 용한(龍汗)-우목리(牛目里)에 이르는 해안 촌락의 터주가 대부분 여씨(汝氏)라 한다. 
 
○ 곡강(曲江) 
3리로 신라시대에 병마를 방목사육했던 지역으로 나부산(放牧山)이라 부르는 야산이 곡강천을 경계 로 곤륜산(崑崙山.177m. 일명 高靈山)과 마주하고 있다. 산의 북동쪽 기슭에 세 돔으로 나누어 마을 이 형성 되었다. 웃각단은 나부산밑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남쪽 제당에서 동지달 초나흗날 제사를 지낸다. 마을 뒤쪽에 해주오씨 재실이 있다. 
 
○ 봉림이불마을 
3리로 영일정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20년 전까지 동제사를 정월보름날 지재다가 폐지했다. 이 지 역 해안선을 따라 봉림수(鳳林藪)가 있었다. 효종 때 최군수가 모두 베어 샛바람이 극심하자 방목하던 말을 구룡포의 북목(北牧 )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주변 송림 속에 모래밭을 일구어 만든 시금치 단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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