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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장성동(長城洞)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이곳에는 城(성)이 있어 城谷(성곡)이라고 불러 왔는데, 이곳 城(성)의 옹달샘에는 춘하추동 물이 샘처럼 솟아나니 옹달샘은 식수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 물을 마시면 힘이 세어지고 장수한다고 했는데, 그(長:장)자와 (城:성)을 합하여 장성이라 칭함. 
 
○ 장성동(長城洞) 
1914년 3월 1일 침촌동(針村洞), 원촌동(原村洞), 장흥동(長興洞), 성곡동(城谷洞)의 3개 자연부락을 합할 때 장흥과 성곡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동명이다. 
 
○ 성곡(城谷) 
성실이라고도 부르는데 방촛골(방치골) 남쪽의 사안골에 형성된 것으로 고려말 1387년에 두모적포(豆毛赤浦)에 수군만호첨사진(水軍萬戶僉使鎭)을 설치할 때 이곳에 성을 쌓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성터는 알 수 없으나 마을 뒷산 밑 덕곡에 포강(浦江)이라는 바가지로 떠먹을 만큼의 물이 나오는 옹달샘이 있었다고 한다. 1975년까지도 논농사와 포도재배를 주로 하던 20여호의 작은 부락이었으나, 그 후 마을 앞구릉지와 들판 및 현 장량동 사무소 동편 구릉지의 약 30%땅이 주택 단지로 지정되어 아파트와 단독 주택 등 1800여 호가 들어선 신시가지로 변모하였다. 이에 따라 침촌에 있던 장량동 사무소를 1988년 4월 7일 이 곳으로 옮겼다. 
 
○ 원촌(院村) 
옛날 흥해군수가 하루 밤 자고 갔다고, 또는 조선조에 원(院)이 있었다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남북과 동서로 2km정도 뻗어있는 골짜기에 30여호의 독가촌을 형성하고 있는 마을로 예로부터 전씨(田氏) 와 차씨(車氏)가 많이 거주해 왔다. 
 
○ 장흥(長興) 
주변 산이 소의 입 또는 소가 누워 있는 형세와 같다 하여 우구리(牛口里) 또는 우구머(우구몰)라고 불리어지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전라도 장흥 사람이 이곳에 와서 살았다고 하여 장흥이라 하였다고도 전하며, 평해 황씨가 많이 거주해 왔다. 
 
○ 침촌(針村) 
마을 뒷산 지형이 바늘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방직후 자력갱생운동이 활발했던 마을로, 1960년에 장성동 사무소 개소되어 1970년엔 장량동사무소로 증축되었다가 1988년 성곡으로 옮겨졌다. 동제가 정월 대보름날 행해졌다. 1990년 5월부터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하여 자흥(우구몰)과 침촌지역을 중심으로 약 53만 평규모의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추진하여(1999년 12월 완공) 현재는 동네의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동제당도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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