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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대신동(大新洞)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1998년 9월 1일 학산동이 편입되었다가 2009년 1월 1일 학산동과 중앙동이 통합되면서 중앙동이 되었다. 
 
○ 대신동 
일제시대 초 동빈지역이 매립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애장터가 있던 곳이었으나, 1917년 이후 일인들이 진출하여 삼원공장(해방후 동해어망(주), 현 고려아파트 단지)등을 설립하면서 신흥하는 마을로 성장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해방 후에 갖게 된 동명이다. 해방 직후 상당 지역이 각종 채소밭이었으나, 1954년 포항고등학교(현 항도여중 터)가 세워지고, 인근에 50세대의 대신주택단지가 건립되고(1959~1960), 북부공설시장(1955년 개시, 1965년 허가)이 들어서면서 크게 변모하였다. 선린애육원은 1988년 환호동으로 이전되었다. 한동대학교 선린병원, 선린재활(한방)병원 고려아파트, 북부시장 등이 위치해 있다. 
 
○ 나루끝  
- 북구 학산동과 덕수동, 대신동의 경계지점인 이 '나루끝'은 어떻게 해서 불려졌을까 ? 
 
포항에 사는 사람이라면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나루끝'이라고 불리어지는 이 지명에 대해 한번쯤 의아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현재의 포항시가지는 남쪽으로 종합경기장쪽 상도동과 대도동, 대잠동 일대로 도시가 많이 팽창해 있으나 지금부터 20년 전쯤만 해도 북부시가지는 '나루끝'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있었다. 
 
특히, 80년대초 양학동에서 용흥동, 우현동을 잇는 시가지 우회도로가 나기전까지는 포항과 인근 경주와 영덕, 울진 등지의 경북 북부지방과 삼척, 강릉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7번국도)이기도 했다. 
 
'나루끝'이란 원래 많은 선박을 대어놓고 육지와 해상을 연결하는 교통지역으로 하나같이 큰 강을 끼고 있거나 해안을 끼고 있으며 많은 화물들이 부러져 있고 뱃사람들과 화물을 운반하는 인부들이 많이 운집해있으며 선술집 등이 늘어져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길이며 빈틈없이 들어선 고급건물들 뿐인 도심한가운데에 '나루끝'이라는 지명이 있으니 그저 이상한 생각이 들뿐이다  
 
- '나루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기록은 없다. 
 
원래 포항은 형산강 하구에 토사로 형성된 삼각주가 발달한 곳으로 신라때는 조그만한 포구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형산강 지류가 세 갈래로 흐르고 있었는데, 중심지류는 효자방면에서 양학동을 거쳐 현재의 죽도어시장 옆 칠성천으로 연결되어 동빈내항으로 흐르는 지류와, 남쪽으로 연일읍을 거쳐 지금의 냉천으로 연결되어 동빈내항으로 흐르는 지류, 북쪽지류는 서산기슭을 따라 지금의 '나루끝'을 거쳐 현재의 동빈내항으로 잇는 학산천이 그것이다. 
 
형산강 하구인 동빈내항은 세 갈래의 지류를 끼고 있는 폭이 매우 넓은 강이었으며, '나루끝'은 강 하구 쪽에 위치한 포구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지형적 여건 때문에 '나루끝'은 지금으로부터 1백년전까지만 해도 하천을 끼고 소형 선박의 왕래가 성행한 교동의 요충지였다. 
 
특히 북쪽으로 흥해읍과 신광, 청하, 송라 등 포항 북부지역과 청송, 영양, 안동, 울진 등 경상북도 북부지방으로 통행하는 사람은 모두 이곳 '나루끝'을 거쳐야 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해산물이 모두 이 '나루끝'으로 와서 내륙지방으로 수송되었다. 때문에 '나루끝'은 온갖 선박과 뱃사람, 이를 이용하는 각처에서 몰려 온 사람들, 곳곳에서 실려 온 온갖 물건들로 일대 성시를 이룬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화가 시작되던 1900년대부터 '나루끝'과 연결된 학산천과 칠성천 등지의 형산강 지류가 조금씩 매몰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초에 형산강의 원류에 둑을 쌓고 물길을 현재와 같이 돌려지자 이들 세 지류는 조그마한 소하천으로 변모되고 말았는데, 그때부터 '나루끝'은 완전히 제 기능을 잃게 되었고 간간히 소형선박이 드나들다가 이것마저 얼마가지 못했다. 
 
형산강에 제방이 쌓여지자 포항지방의 모습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강폭이 2백여 미터나 되던 칠성천과 '나루끝'을 끼고 있는 학산천의 강폭이 빠르게 좁아 졌으며, 이들 하천변에 논밭이 생겨나고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변모한 곳이 지금의 '나루끝'인데, 형산강의 원류가 막히자 제일 먼저 강바닥을 드러냈으며, 서산과 모갈산(일명 수도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순식간에 강을 매워버렸다.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던 '나루끝'이 불과 수년만에 강물과 배는 간 곳 없고 밭이 생기고 논이 생기고 집이 들어서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나루끝'이라는 이름만 남기고 빠르게 모습이 변해 버렸던 것이다. 
 
육지로 변해버린 '나루끝'은 덕수동과 학산동의 일대의 중심지 일뿐만 아니라 시가지의 급속한 도시화가 전개되어도 교통의 요충지 역할은 계속했다. 80년대 초 우현동 쪽으로 7번국도 겸 시가지 우회도로가 생겨나 교통이 많이 분산됐지만, 지금은 여전히 포항시내의 모든 간선도로가 이곳을 통과하는 육로교통의 중심지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 바로 '나루끝'이다. 
 
'나루끝'의 옛모습은 이곳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을 살아 온 토박이 노인들만이 그 윤곽이 나마 어슴푸레 기억할 뿐, 현재 논밭은 물론 강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칠성천과 함께 동빈내항과 연결된 하구쪽으로 강폭 10m정도만 남겨져 있는데, 이것 마저 복개되어 시가지의 배수로도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우현동·학산동·대신동의 경계 지점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형산강의 지류인 여을천(余乙川) 이 흘러 각종 선박이 왕래했던 나루터였는데, 1920년대 말 형산강 원류의 제방축조 이후 하천의 유량이 감소하면서 메워져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매년 동짓달 초이틀날 동제를 지낸다. 현 학산동 경로당(舊 학산동 사무소 터)에 용담제당(龍潭祭堂)이 있었으며, 포항 여자고등학고 앞에는 6.25 전쟁 때 희생당한 학도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학도의용군 6.25전적비가 있다. 동해큰교회와 포항여자고등학교, 포항중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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