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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기계면 계전리(桂田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1914년 계동(桂洞),정자동(亭子洞),신정동(新田洞)을 합하여 계전리(桂田里)라 하였다.  
 
○ 저동(猪洞),계동(桂洞) 
마을의 지형이 돼지형국이라 하여 저동(猪洞)이라 불러오던 것을 병자호란때 피난을 와서 살게된 손득상(孫得尙)이 계수나무를 심고 자(子)를 계종(桂種)이라 한데 연유하여 그 후손이 계동이라 부르기도 한 것이라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3년 노거수회에서 심은 계수나무가 일부 자라고 있다. 
 
계동서당 건물을 이송정(二松亭)또는 송헌재(松憲齎)라 하며 경주손씨 재실로 쓰고 있는데 대한불교 진각종 창설교주 손규상공의 첫 강론 장소이기도 하다. 200여 년 전에 월성손씨 가문의 재사(齋舍)터를 매입한 월성이씨 재실 학고정(鶴辜亭)은 마을 동쪽 느티나무 노거수림 속에 있고, 그 북서 쪽에 안동권씨 재실이 있다. 아랫돔에는 진각종 신수심인당(信修心印堂)이 있다. 칠월에 느티나무 당산목에서 동제사를 지낸다.  
 
○ 새터[新墓],신전(新田) 
계동 서편 산능선 너머 기북면 대곡리 쪽에 이(李)터골이란 곳이 있는데, 월성이씨들이 피난하여 살다가 새 마을을 일궈 이주하게 되었으므로 새터라 했다 한다. 월성손씨 효자각(孝子閣)과 재실 삼락정(三樂亭)이 있다. 7월에 동제사를 지낸다.  
 
○ 정자동(亭子洞) 
큰 오동나무 정자목이 있었다 하여 정자동(亭子洞)이라 했는데,봉계정(鳳溪亭)과 함께 80여 년 전 소실되었으며, 그 후 동제사도 폐되었다. 최국현(崔國賢)선생이 강론하던 강당 터에 후손들이 건립한 학계정(鶴溪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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