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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청하면 덕천리(德泉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청하군 역면지성이던 것을 고종 32년 (1895) 내북면에 편입시켰다가 1914년 관동과 송천, 외일동과 외삼동의 일부를 병합, 큰 샘(버덩우물)이 있다 하여 덕천리라 하고 송라면에 편입시켰다.1973년 3월 12일 법령 제6542호에 의거 주민의 편이를 위해 다시 청하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75호 정도 살고 있다.  
 
○ 관동 
조선조 때 송라도찰방이 있던 마을이며 내일동이라 부르던 것을 고종 32년 찰방이 폐쇄되자 관아소재지라 하여 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둘레 521척, 높이 5척의 석축 담장이 있었다 하며 연당이 있던 부근에 300~400여년생 은행나무 당산목이 있어서 정월보름이면 유씨터주, 진씨골목 신위를 모시고 동제사를 지낸다. 조선조 후반기에 이르도록 관전장(8일, 18일, 28일) 있었다고 전한다. 마을 동편 7번 국도변에 관동못이 있는데 지금은 매립되어 면민복지회관이 건립되어 있으며 동편 사거리 마을은 5~6호 살았는데 없어지고 한전청하출장소가 들어서 있다. 1921년 설립된 침례교회는 덕성리로 옮겼다. 
 
○ 송천 
내이동이라 부르던 것을 찰방이 없어지자 송천수 속에 펑펑 솟아 흐르는 샘이 있어 마을 이름도 송천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샘에 일인들이 혈을 질렀다 한다. 스무 그루의 노거수가 남아 있는 송천 숲 서편에 제당이 있어 정월대보름마다 안씨터주 신위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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