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 기계면 인비리(仁 庇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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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산( 雲住山, 806m)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여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뒤짝골(인비), 밀밭번데기, 포구나무지이, 대기터, 토월리와 같은 자연부락을 합하여 인비(仁庇)라 하였다.
○ 뒤짝골.인비(仁庇) 먼저 추(秋)씨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하(河)씨가 뒤이어 들어와 거주하였으며, 경주김씨가 세 번째 입주 하였다 한다. 추씨와 하씨가 타지로 떠난 뒤 마을이 커지고 장터가 생기며 역촌이 되어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어진 사람들은 숨어 버리게 되어 인비(仁庇)라 부르게 되었다. 광복 후에 4명의 장성이 태어났다. 1975년 건립된 인비교회가 있다. ○ 대기터 조선시대에는 5일장이 섰다고 한다. 목재(大峴)를 넘나들려면 호환(虎患)이나 도적떼가 두려워서여러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밀밭번데기 산기슭 밀밭이 많던 곳에 마을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포구나무지이 큰 포구나무가 있고 그 아래 주막이 있어 쉬어가던 마을이다. 인비가 역촌일 때부터 일제시대에 이르도록 장이 서던 지역이다. ○ 토월(吐月) 마을 남쪽 함월산(含月山 ;함박산)에 달이 돋는 모습이 마치 산이 달을 토하는 듯하다 하여, 토월리(吐月里)라 했다. 뒷산에 이여송이 혈을 질렀다는 자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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