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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죽장면 현내리(縣內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옛날 대홍수 때 수면 위에 남은 산머리의 모습이 광주리 같았다 하여 광주리산이라 불리는 광재산(光才山) 남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창(倉)마을을 중심으로 나대(羅代)에 현기가 있었으므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현내리라 이름하였으며, 창(倉)마을, 지통(紙通), 양지마을, 대송(大松)과 같은 자연부락이 있다.  
 
 
○ 창마을 
현내리 들머리에 위치하며 창리(倉里)라고도 한다. 현기가 되어 있을때 관의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전한다. 마을어귀 성황(城隍)들에는 200-400여년생 느티나무와 음나무등 노거수림(老巨樹林)이 100여평 남아 있으며 그 중 최고령수(最高齡樹)인 느티나무(가슴둘레:5.8m) 당산목에서 단오날 중마을, 지동, 양지마을 합동으로 당제(堂祭)를 지낸다. 원래는 이 지역 모두를 창마을이라 불렀다 한다. 이 숲에서 부윤(府尹) 권상공만고불망비(權相公萬古不忘碑)와 부윤유상공장환애민선정비(府尹兪相公章煥愛民善政碑)가 있다. 성황(城隍)들에는 옥(獄)터가 있었는데 농지로 변하였고 돌담의 흔적이 도로변에남아있다. 산남의 진에 참여한 이한구 의사(李韓久 義士)의 출생지이며 마을어귀 묘소에 비(碑)가 있다.  
 
 
○ 중마을[中村]  
창마을 서편 양지마을 사이에 위치하며 중간에 있다는 뜻의 지명이다. 동회관이 이 마을에 있다 원래는 동쪽으로 길게 창마을과 연결되어 있었다.  
 
 
○ 지동·지통(紙通)·지등(只等)  
종이를 만들던 곳이라 지통(紙通)이라 고쳐 불렀다 한다. 한때 원(院)이 있었다고도 전한다.  
 
 
○ 양지마을  
두마리(斗麻里)와 봉계리(鳳溪里)의 갈림길 양지바른 산록에 형성된 마을이다. 밀양박씨가 개척한 마을이라 전한다.  
 
 
○ 대송리(大松里)  
큰 소나무숲이 있었던 마을이라 한다. 지금은 전답(田沓)으로 개간되고 그 흔적이 없다. 구읍지(舊邑誌)에 의하면 고려 때 향교(鄕校)가 있던 터에 건립되었던 죽장초등학교 현내 분교장(1970.10.12-1996.3.1)은 폐교되었다. 현기(顯基)건물의 북쪽마을이란 뜻으로 북관촌(北館村)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 서편에 대각사(大覺寺,1965년 설립)가 그 안골 무학대(舞鶴臺)에 무학사(舞鶴寺:1957년 설립)가있다. 흥해배씨(興海裵氏)와 월성이씨(月城李氏)가 이 마을을 개척 세거(世居)하여 300여 년생 느티나무 당산목에 단오날 동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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