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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청하면 청계리(淸溪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천령산[해발 775m, 정상 주봉을 우배봉이라 함]에서 발원한 물이 안청계리 쪽으로 한 가닥, 바깥청계 쪽으로 한 가닥 흘러내려 삼송원, 즉 월포천을 이룬다.  
천령산은 원래 신구산이라 불렀으며 이 산의 중턱에는 상태사지가 있다. 부근에는 5∼6호의 화전민촌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어지고 없다. 
주진산인 호학산은 청계도사가 학을 불러서 놀았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며 신증동국여지승탑에 진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와 신라가 세력다툼을 할 때 격전지로 전해 내려온다. 그 지명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도끼재 
안청계리에서 회학지로 넘어오는 재, 도끼로 쪼은 듯 혈을 자른자리이며 고구려 군사들이 도끼와 같은 무기류를 버리고 간 곳이란 얘기가 전해진다. 이 아래 도칫골이 있다. 
 
○ 거진련 
고구려군이 폐전하여 진을 거두고 송라쪽으로 넘어간 고개, 외청리의 동북방이 된다.  
 
○ 호학제 
삼국시대에 막은 못으로서 고구려 군사가 언젠가는 되돌아간다는 뜻으로 회학지라 부르기도 한다. 이 못은 1933년 중수하였으며, 만수면적 11㏊이다. 
 
○ 백리두들·백리전원 
경주에서 백 리되는 지점에 있는 언덕배기로서, 이곳에서 고구려와 신라 양군이 일전을 치루었고, 여기서 패한 고구려 장수의 항복을 예대두들에서 받았다 전한다. 
 
○ 용잠이등골, 용와등 
회학지 동편 상능선으로서 용의 등을 닮았으며 이곳에 용의 깃발을 든 신라군이 진을 쳤다 한다.  
 
○ 진등곡 
용잠이등골 동편 골짜기로서 고구려군의 진영이 있었으며, 그 때의 모닥불이 사방을 환히 밝혔다 전한다. 지금도 활무덤이란 지명이 있어 무기를 묻어버린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 안청계·안청리 
도끼재 동편 5여 호 사는 산촌이다. 영천이씨제실이 있고 마을어귀 팽나무 당산목 아래 제당에서 정월보름에 청송성씨 터주신위에 제사를 지낸다. 호룡골 못이 있고, 그 아래 작은 저수지를 1988년 하나 더 축조하였다. 
 
○ 바깥청계·외청리 
원래는 개천 건너 언덕에 있었는데 뱀의 극성으로 이주하여 현 위치에 마을을 일구었다 한다. 맑은 냇물이 사시장천 흐르는 지역이라 하여 청계라 불렀다 한다. 현재 70호 정도 살고 있으며 쌀농사를 주로 하는 마을이다.  
청안이씨 가문에서 이순창 의사가 배출되었으며 마을 북서쪽에는 서포정[서포선생 숭봉지처]이 있었고, 마을 속에는 청학정[청안이씨 제실]이 있다. 고려 때는 신지부곡이 있었다 전한다. 마을 서쪽 가까이 1965년 준공된 만수면적 12.29㏊의 청계지가 있고, 용지를 가까이는 사실지[만수면적 4.1㏊]가 있는데 1958년 준공되었으며 사적당지라고도 불렀다.  
호학산의 삼용추를 거슬러 오르면 옛날 사기그릇을 굽던 사구장터란 마을이 있었다 한다. 외청리에는 1974년 설립된 청계교회가 있고, 동제사는 정월보름에 순흥안씨 터주와 영천이씨 골목신위를 모시고 지낸다.  
이 마을 동편에 청계숲이 있으며, 400년생 느티나무 노거수 다섯 그루가 남아 있다. 1989년 경지정리를 완공한 지역이며 이를 기념하는 비를 들 가운데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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