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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청하면 서정리(西井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청하의 진산인 호학산 주맥이 동남주하다가 우족산[가로질산이라고도 부른다]에 이르러 큰 혈을 이루었는데 그 남쪽 산기슭에 김호, 감정, 밤나무지이, 모과장과 같은 자연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합하여 1914년 서정리라 하고 1, 2, 3동으로 분동하였다.  
 
○ 금호·금전 
아혜현기가 있던 마을로서 신라가 점유하여 화방으로 현기를 옮겨갈 때까지 이 지역의 중심 마을이었다. 옛날 달골에는 금광이 있었고, 마을 북동 산골짜기에 금씨골이란 지명이 있고, 마을어귀 샘에서 장님 오빠와 물을 먹다가 금덩이를 샘 속에서 발견하고 놀라 소리치는 통에 소경의 눈을 뜨게 했다는 전설 등으로 미루어 이 지역에 금이 산출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금정리란 지명은 이에 유래한 것이며, 금호동이란, 나대의 풍수서인 성지비결에 『물위에 뜬 금바가지 형국』의 혈이 있다고 한데서 연유한다.  
고려 때에는 김해부곡을 , 조선조에는 금정원을 두었으며, 쇠발골에 향교가 있었는데 숙종 39년 (1973년) 덕성리로 옮겨갔다. 마을 어귀엔 곤노차나불이 있는데 두부는 파손되었다. 그 옆에 고려 때 성도사라는 작은 절이 있었다 한다. 월성이씨 이 마을 입향조 농산이동국추모정인 농산정이 있다. 월성이씨 문주지역은 노송림이 울창하였는데 1988년 개벌을 하였으며, 그 뒷골에는 1943년 창건된 아혜사란 작은 절이 있고 남쪽 옛 마을터 앞에는 윤락충효리란 돌 비석이 도로의 이동을 따라 30여m 북쪽으로 옮겨 세워져 있다. 마을 서편에 서부초등학교가 폐교(현재 경락한의원)가 되었고, 그 앞에는 월성이공동신영세불망비가 있다. 안심지 아래에 양돈장이 있고 부근 도로변에 안학서영세불망비가 있다. 
 
○ 감정리 
30여 호의 작은 마을로서 물맛이 좋은 샘이 있어 이에 감정리라 하였다 한다. 이 마을 서편 도로변에는 임란 때 곽재우 장군을 따라 출전하였던 성균관진사 김득경 의사와 그의 아들 문용 의사의 기단비가 있다. 
 
○ 모과지이·목아정 
감정리 밤나무지이와 더불어 서정2리에 속하는 마을로서 400여 년생 모과나무 당산목 곁에 샘이 있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며, 정월보름날 동제를 감정리와 더불어 지낸다. [터주는 달성서씨] 
 
○ 밤나무지이·율전 
시지골 안골짝에 접어들면 언덕위에 30호 정도 사는 마을이 있는데 밤나무 가 많았을 때 불려진 지명이다. 이 마을 북쪽 골짜기 건너 사실못 남쪽 옛 용지마을 터에 제당이 있어 덕성2리와 합동으로 정월보름날 제사를 지낸다. 모시는 신위는 산신령과 담양전씨, 황주변씨 터주에 월성최씨 골목 신위이다. 청하면 당시 사직제를 지내던 사직당이 사실지 북쪽 둔덕에 있었다 하며 사실지를 사당지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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