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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연일읍 중명리(中明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제산의 동쪽 능선과 골짜기에 길게 뻗은 조두봉과 조족곡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며 지질시대 말인 제4기부터 인류가 출현하면서 고대인이 살아온 흔적인 고분들이 앞 뒤산에 있다. 영일군 서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중메골, 원동, 경주군 강동면 중명을 합병하여 중명리로 연일면에 이속 되었다. 형산사 절 아래에는 우안 양수장이 설치되어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400년이 가까운 회나무가 있고 마을 입구에는 노거수가 군집된 곳에 중명정을 김수근(진성산업 대표)씨가 건립하여 마을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 그 아랫 쪽에는 옛 부조 시장 터에 새로 생긴 도로가 아름다운 풍경을 막고 있다. 이곳 중명은 부조시장이 흥행했을 때 현재 중명 1, 2리 중간에 흘러내리는 작은 보를 경계로 영일군 중명과 경주군 중명으로 행정구역을 달리했다. 경주군에 속한 중명은 행정과 통신은 경주군의 것을 이용하나 생활권이 영일군으로 불편한 것이 해소되었다. 이곳에는 옛 부조시장의 흥과 망에 대한 유허비가 방치되어 있다. 원골, 원리, 고려말기에 문정공 설곡 정은 도선생의 서원을 세웠는데 많은 유생들이 모여들어 공부를 하였다고 하며 이곳에 있던 곳이라 하여 원골 원리로 불러왔다. 서원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리고 그 자리에는 [고려 문정공 설곡 정선생 유허비]라는 흔적만 남아 있다. 중명리 산38번지에 포항문화방송 중명 송신소가 있다. 
 
○ 중명골(중메골)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연오랑 세오녀가 왜국으로 떠나 버리자 신라 땅에는 해와 달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왜국에 연오랑과 세오녀를 찾아갔던 사신이 대신 가져온 세오녀의 비단옷으로 제사를 올렸더니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때 광명이 비치는 한 가운데에 위치하였다 하여 중명(中明)이라고 불렀다 한다. 중메골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보가 경주시와 포항시의 경계이며, 이 경계로 한 마을이 행정구역을 달리하게 되었다. 영일 중메골로 따로 부르기도 하며, 통신시설은 경주시의 것을 이용하나 생활권은 포항시이다.  
 
○ 아래부조(下扶助)  
강동면 부조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아래부조라 부르게 되었다. 형산 강수로를 통하여 해산물의 집산지던 전국 3대시장의 하나였다. 현감 조동훈(趙東勳) 선정비와 현감 남순원(南順元) 선정비가 있다. 
 
○ 원리(院里) 
고려말 공민왕 때 문정공 설곡 선생이 이곳에 서원을 세워 많은 유생들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현재 마을 뒤쪽에 높이 1미터 가량의 비석에 고려문정공설곡정선생유허비(高麗文貞公雪谷鄭先生遺虛碑)라는 비석은 있으나 서원의 위치나 흔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서원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원골, 원동이라 불려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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