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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九龍浦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 구룡포리(九龍浦里) 
영일만을 형성하고 있는 범꼬리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리 달리다가 응암산의 한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활처럼 휘어져 구룡포만을 이루는데 이를 끼고 길다랗게 놓여 있는 마을이다. 읍소재지로서 우체국, 파출소, 단위농협, 영일수산업협동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등의 관공서와 금융기관, 구룡포 초등학교, 구룡포동부초등학교, 구룡포중.종합고등학교, 구룡포여자 중.종합고등학교 등의 각급 학교가 밀집돼 있다. 
 
1923년에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항구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용두귀운(龍頭歸雲), 옥산반조(玉山返照), 주잠명월(珠岑明月), 항구장제(港口長堤), 유명조일(維溟朝日), 창주모연(滄珠暮煉), 우진화선(盂津畵船), 석문청풍(石門淸風)등 8가지를 구룡포팔경(八景)이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장기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에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를 지날 때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가 그 중 1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친 일이 있는데, 9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에 깊은 소(沼가)있었는데, 이 소(沼)안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이 동해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승천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창주리(滄珠里),염창골 
옛날 이 곳 해변(현재의 구룡포초등학교 자리)에 염전이 있었을 때 소금을 쌓아 두는 창고가 있었다하여 염창골이라 하다가, 그 뒤에 서늘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창주리라고 불러왔다 한다. 1936 년 개설된 구룡포시장이 있으며 1925년에 설립된 구룡포교회와 1935년에 설립한 성덕심인당 이란 절이 있다. 1942년 읍승격시 구룡포1리와 2리 분리 되었다. 
 
○ 중앙리(中央里),도산리(桃山里) 
구룡포리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리로 불려져 오고 있으며, 옛날 이곳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도산리라고도 한다. 현재의 구룡포3리와 4리에 해당되며, 1915년 세워진 용흥사라는 절이있다.  
 
○ 돌문(石門洞) 
옛날의 장기목장성의 출입문인 돌문(石門)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돌문 혹은 석문리라 불려오고 있다. 돌문은 높이 11m, 폭 6m정도의 자연석 바위였는데, 매암산을 중심으로 방목해 놓았던 말을 해 질 무렵 몰이하여 이 문을 통과할 때 숫자를 세어 축사에 넣었다고 한다. 안전사고의 위험과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1988년 제거하였는데, 그 돌 일부는 읍사무소 정원에 있다. 3.4리에 해당한다. 
 
○ 장안리(長安里) 
현 구룡포5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1953년 동리 분할 때 지형이 길다고 하여 장(長)자를 따고, 마을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안(安)자를 따서 장안리라 이름지었다 한다. 마을 뒤편 언덕위에는 충혼탑, 충혼각, 용왕당, 구룡포개척자유공탑 등이 있는 구룡포공원이 있다. 충혼각은 1960년에 건립 된 호국 영령을 모신 사당으로 현재 중위 안대수 외 178위를 모시고 있다. 용왕당은 이지역의 풍어와 안전 조업을 비는 제당이다. 구룡포개척자유공탑은 일제 때 구룡포 개발에 공헌한 일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인데, 해방 후 친일적 내용이 새겨져 있는 탑의 표면을 훼손하여 명문은 알아볼 수 없으나 폭 1.5m, 높이 5m나 되는 자연석의 탑신은 그대로 서 있다.  
 
○ 용주리(龍珠里), 사라끝(沙羅末) 
구룡포만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옛날 이 곳에 모래밭이 있었기 때문에 사라끝(沙羅末)이라 불려 왔으며, 마을 주민들이 풍어제를 올리기 위하여 인근 구룡포 5리 지역에 용왕당이라는 제당을 세우고 용주리라고 불렸는데, 마을 지형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는 데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 구룡포6리에 해당하며, 동쪽 끝에는 1948년에 설립된 구룡포중,종합고등학교가 있다.  
 
○ 새골(大新里) 
현 구룡포7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약 200년전 이 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 새로 생긴 마을이라 뜻에서 새골이라 했는데, 1942년 읍 승격시에 마을을 크게 번창시킨다는 뜻에서 대신리(大新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구룡포해수욕장이 있으며, 수산물가공업체인 동원식품(주)구룡포공장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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