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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흥해읍 성곡리(城谷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성하(城下), 충곡(忠谷), 냉천(冷泉), 마장(馬場), 소푸리(沼蒲里), 점촌(店村), 구억(九億)과 같은 자연부락을 1914년 통폐합하여 성하와 충곡의 각 1자을 따사 성곡(城谷)이라 하여 달전면에 편입했던 마을이다. 
 
주변경치가 아름다워 고죽령청풍(孤竹嶺靑風), 광정봉낙하(廣鼎峰落霞), 장백산록죽(長柏山綠竹), 신산협청송(新山峽靑松), 대보평농가(大洑坪農歌), 어용곡절벽(魚龍谷絶壁), 정자려고목(亭子閭古木), 수구등모연(水口嶝暮煙)을 성동2리에 거주하시다 1976년에 작고한 오극상(吳極象)님이 1967년도 발행한 일월향지(日月鄕誌)의 22페이지에 처음으로 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상성팔경(上城八景)으로 전해지고 있다.  
 
○ 말맛[馬場·馬坪] 
1리로 조선조 효종6년 (1655) 대동배(大冬背)로 옮겨가기 이전까지 토성을 쌓고 말을 사육하던 곳이며,옛날에는 흥해 권무정의 궁사들이 말타는 연습을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정월보름에 동제사를 지낸다.  
 
○ 소포리(沼蒲里)  
1리로 말먹이 풀이 많이 자라는 연못인 소포(沼蒲)가 있었다 하여 소포리라 불리었다고도 하며, 소풀이 많이 난다 하여 소풀리라 했다고 한다. 옛날 많이 뛰놀던 숲이라 전하는 서리미[設林]숲에 제당이 위치한다. 
 
○ 나환자촌[애도원] 
1리로 딴낫골이라고도 부르며, 6.25이후 개신교 재단에서 음성 나환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개척한 마을로서 양돈, 양계로 유명한 마을이다. 성곡교회가 있다. 
 
○ 찬샘이[冷泉] 
2리로 200여년 전 회덕황씨가 터를 잡은 마을로, 물이 차고 맛 좋은 샘이 있다 하여 찬샘이라 불렀다 한다. 음력 6월 15일 우물 옆 돌 제단에서 동제를 지낸다. 달전제일교회가 있다. 
 
○ 점촌·주막(酒幕) 
2리로 상점과 주막이 있었기에 동명을 점촌 혹은 주촌이라 했다. 동네 어귀에 한때 달전지서가 있었다. 
 
○ 성하(城下) 
2리로 마장성의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성하리라 불렀다 한다. 달전 검문소가 있고, 달전면 사무소가 이 마을 어귀에 인건되어 있었다. 
 
○ 구억(九億) 
안동권씨가 터전을 이룩한 마을이라 하며, 사일마을과의 경계지점에 아홉 명의 억대 부자가 살았다하여 구억이라 불리었다 한다. 3월 삼짇날 동 제사를 지내왔었다. 금강정사(佛敎講學)가 있다. 
 
○ 충곡(忠谷) 
3리로 충신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충곡(忠谷)이라 했다는 설과 학천과 성곡에 걸친 남서방위의산이 학의 형국이고 이 마을이 그 학의 먹이가 되는 위치라 하여 충곡(蟲谷)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삼월 삼짇날 동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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