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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기계면 봉계리(鳳溪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봉좌산(鳳座山 ; 589m) 북쪽에 위치한다. 1914년 인비(仁庇)의 일부와 치동(致洞), 동자방(童子房), 선래(仙來), 관평(灌坪), 상이(上伊), 하이(下伊)를 합하여 봉계리라 칭하였다. 봉좌산 꼭대기에는 봉좌암(鳳座岩)이라는 봉황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치동의 월성김씨와 관평의 파평윤씨 사이의 성씨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 치동(致洞,治洞),봉계  
봉좌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중간에 위치하여 예부터 봉계라고도 불렀다 하며, 1637년 경주김씨 기계 입향조인 김언헌(金彦憲)공이 칡숲을 치고 마을을 일구었기에 벌치동(伐致洞)이라 하던 것을 간단히 치동이라 하였다. 분옥정(噴玉亭)과람덕재(覽德齋),봉좌산기도원이 있다. 마을어귀 당산목에서 정월에 동제를 지낸다. 산남의진 김태환(金泰煥)의사의 출생지이다.  
 
○ 선래(仙來), 서천[鋤川] 
치동 어귀에 위치하며, 고려 공민왕 때 홍수로 황폐해진 전답을 호미로 북구하였다 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기남초등학교(1957.3.1-1994.3.1)는 폐교되고, 포스코외주파트너사 연수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봉계교회(1960)가 있다. 실내숲은 1.5Km에 달하며 노거수가 많다.  
 
○ 동지방[童子房] 
봉좌산 정상(해발589m)의 큰바위[봉좌암]를 산중턱에 있는 이 마을에서 쳐다보면 동자의 모습 같아 마을 이름이 생겼다 한다.1530년경 월성최씨(崔昌建)와 진주강씨(姜順福)가 개척한 마을이다. 300여 년생 참나무 당산목에서 정월보름에 제사지낸다.  
 
○ 관평(管坪) 
남북으로 길게 뻗친 봉계숲의 서편에 위치하며,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 태사의 묘와 재실(齋室) 및 봉강재,파평윤씨시조 윤신달비가 있다. 고려말 경주부윤(府尹)으로 있던 태사의 후손이 이곳에 관청을 설치하고 분실된 태사의 묘를 찾았다 하여 관평(官坪)이라 불렀으며, 한편 물대기 좋은 들이라하여 관평(灌坪)이라고도 한다.  
 
○ 봇걸,이동(伊洞)  
고속도로 건설로 모습이 크게 변했으며, 윤씨(尹氏)들 집성촌이어서 부른 윤동(尹洞)은 차츰 타성이 이주해와 인자(人字)를 더하여 이동(伊洞)이라 고쳤다. 상이(上伊), 하이(下伊)가 있는데, 상이 서쪽 이리재에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기계터널이 계획되어 있다. 이동지(伊洞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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