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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양덕동(良德洞)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양덕동은 사량골, 불미골, 돌골, 기낭골, 북시골, 대사말골, 대박골등 여러 작은 골짜기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하여 기남골과 갈발리 일대에 34만평의 규모의 토지구획정리사업(1990.5~1999.12)을 추진하여 원래의 동네 모습은 사라졌다. 대구지방법원포항지원과 대구지방검찰청포항지청이 신축되어 있다. 
 
○ 양덕동(良德洞) 
1914년 3월1일 사량동(思良洞),송곡동(松谷洞),신덕리(新德里)의 자연부락을 합할 때 사량과 신덕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동명이라고 하나, 사량(思良)의 덕(德)을 추모한다는 의미에서 동명이 지어졌다고도 한다. 
 
○ 사량골(思良谷) 
조선 정조 때에 진사 최기대(崔基大)라는 이가 이곳에서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고 그이 호 사량(思良)을 딴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 한다. 
 
○ 불미골(冶谷) 
사량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 200여m 되는 곳에 대장간의 불미(풀무)형상과 같은 산, 그 아래에 쇠를 두들기는 쇠판 같은 언덕, 그리고 달군 쇠를 적시는 물통과 같은 작은 못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불미골 또는 야곡(冶谷)'이라 하였다 하며, 영일정씨 2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 돌골(石谷) 
불미골 동쪽 고개 넘어 있는 마을로 뒷골에 큰바위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00여 년전 홍안 김씨가 입주한 후 은진안씨,김해김씨,경주김씨,파평윤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 기남골/기낭골(長谷) 
돌골과 갈바리 사이에 있는 마을로 동북쪽에 천마산이 있으며, 옛날에 기남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 선비가 이 곳을 지나가다가 기와 조각이 골짜기에 너무 길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장곡(長谷)이라 불렀다 한다. 
 
○ 갈바리(渴發理) 
옛날부터 식수가 귀하였다. 물줄기를 찾기 시작한지 3년만에 발견한 샘물의 맛이 없어 먹을 수 없었다. 이에 물이 없어 못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갈발리라 불렀는데,수십년후 갑자기 물맛이 좋은 식수가 솟아나기 시작하자 하늘에서 새로운 덕을 내린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신덕(新德)또는 신기(新起)라고 불렀다 한다. 1960년대에 양덕동 사무소가 있었다. 
 
○ 북시골/부수골(北水谷) 
장성동과 환호동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북쪽 계곡에서 항상 맑은 물이 솟아난다는 연유로 북수곡 이라 한 것이 변음 된 것이다. 이 마을에는 100여 년 전에 기남골에 살던 밀양 박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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