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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오천읍 문충리(文忠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 사거리(師居里) 
신라 시대에는 芽烏支縣에 속하였으나, 고려말에는 이곳에 많은 선비들이 공부한 곳이라 하여 士居里라 부르다가 선비가 太師벼슬을 한 후부터 師居里라 개칭 하였다 한다. 또한,정몽주 선생이 이곳에서 탄생하였다고 하여 포은선생을 추앙하기 위하여 선생의 시호를 따서 지명을 文忠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 백산(柏山) 
양지바른 곳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편 뒷산에 잣나무가 많다고 하여 백산이라 하였다고 전하나 잣나무는 오래 전에 모두 벌채되고 지금은 다시 심은 어린 잣나무 묘목이 자라고 있을 뿐이다.  
 
서산 밑에 위치한 이 마을에 솟아오르는 지하수가 수질이 좋고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어 가뭄이 들어 이웃 마을의 우물이 마르면 백산까지 와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현재 7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야산에 과수원을 일구어 과수업과 농업을 주로 하고 있다. 
 
○ 선래점(仙來店) 
550년경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며 1917년에 문충리에 병합되었다가 1952년 문충 2리으로 분동된 마을이다. 옛날 신라시대에 항사사에 있던 도인 일곱 사람이 현 문덕2 리에 있었다는 구산사를 오가며 도를 닦았다고 하는데 ,이때 이 일곱 선인들이 항사사와 구산사를 왕래하며 그 두 절의 중간지점이 되는 이 곳에서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한 곳이라 하여 선래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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