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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연일읍 달전리(達田里)
첨부이미지 (썸네일 - 첨부파일 뿌리기) 이곳은 흥해군의 남면지역에 속한 지역으로 달전지를 중심으로 광방평, 달밭들, 쑥곡들,절골의 자연부락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달전리로 영일군 달전면에 이속 되었다. 1957년 달전면이 폐지되면서 연일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부터 이곳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들에 농사를 지어 곡창지로 벼농사를 잘 지어 왔다고 한다. 달전의 어원은 능선을 따라 개간한 밭에 농사가 잘되어 달밭들이란 어원에서 붙여진 것으로 전곡에 무엇이든 심어두면 잘되었다고 한다. 광방평, 광발리로 불러온 곳으로 달전지에서 동남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옛날 기계유씨와 평해 황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해 왔는데 조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마을이 불에 타 버리자 살아가기 어려워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성황당을 짓고 기도를 드리니 그때 신령이 나타나 산넘어 옹달샘을 잘 청소하고 식수로 삼으라고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신령이 시키는 데로 행하였더니 마을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하여 [구태]로 불러왔다. 평해 황씨들이 후손 보존에 큰 덕을 입었다고 하여 광방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기계 유씨들이 이곳을 떠나면서 비를 세워 조상의 지혜로움을 기린다고 한다. 쑥곡들, 예부터 쑥이 많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른 봄부터 양식이 없어 쑥을 넣어 죽을 쒸어 먹기 위하여 아낙네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쑥을 케면서 쑥덕거린다고 불러왔다는 설도 있다. 절골, 마을 뒷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절이 있었다고 절골로 붙여져 왔다. 절골에는 불과 3-4호가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현재 한가구도 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달전리는 1958년 저수지를 준공하였고 옛 신라 때부터 물이 좋아 인가가 생겨났다고 한다. 위치 상으로 영일현과 흥해군의 경계지점에 있어서 부패된 말단행정기관이 농민들에 착취가 심해져서 흥해군에서 세금을 내어라고 하면 영일현에 산다고 하고 영일현에 세금을 내어라고 하면 흥해군에 산다고 하여 세금 부담이 없어서 이곳에 이주 해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 꾸꾸림 . 국굴안  
옛날에는 숲이 울창하여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골짜기였으며, 마을 뒤편 벼랑에 호랑이 굴이라고 일컫는 굴이 있다하여 [국굴안]이라고 불렀다. 일제시대와 광복을 전후해서 무분별한 벌목으로 지금은 큰 나무는 거의 없고 골짜기 좌우를 개간하여 주민소득이 높은 편이다.  
 
○ 광방리(光方里) 
달전지 남동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 옛날 기계유씨와 평해황씨가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는데, 임진 왜란으로 온 마을이 불에 타서 살기가 어려워지자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성황당을 짓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때, 신령이 나타나 산너머 조그마한 옹달샘을 잘 청소하고 식수로 사용하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무사할 것이라고 하여 그대로 행하였더니 과연 마을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하여 [구태]라고 부르다가 평해 황씨들이 자손보존의 큰 덕을 입었다고 하여 광방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기계 유씨들은 그후 이곳에서 떠났는데 그들도 비를 세워 조상의 지혜로움을 기리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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